여행기는 왜

 위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여행 자체를 왜 하는지에 대해 답을 해야겠지요. 연인이라면 번잡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오붓하게 둘 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을 것 같습니다. 부부라면 익숙한 생활의 관성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천천히 다시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혼자입니다. 어째서 더 선명한 고독을 느끼기 위해 힘들게 번 월급을 들이부어야 할까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해...' 같은 소리를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애초에 '진정한 나'같은 개념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이미 십 년을 넘게 혼자 살았으며, 매일 밤이 작고 나약한 나와의 대면인데 뭘 더 어떻게 혼자가 됩니까? 낯선 이들과 낯선 공간을 대면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 세탁소 아주머니의 취미를 묻지 않으며, 매일 타는 1224번 버스의 종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여행'보다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런 제가 어쨌든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왜 갔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시간이 좀 남았고, 돈도 좀 생겼고, 어차피 외로울 거 내 자취방보다는 바다 앞에서 외로운 게 더 멋있는 기분일 테니까' 정도가 제일 정직한 대답일 것입니다. 

 그럼 여행을 하면 하는 것이지, 여행기는 왜 써야 할까요. 나도 이만큼 즐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일까요. 만약 여행이 내게 무언가 소중한 것을 주었고 그걸 어차피 아무도 폄하하거나 빼앗지 못할 거라면, 굳이 여행기를 공개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이건 정말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여행기를 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쓰고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여행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여행중 몇몇 순간에 문득 들었습니다. 자세히는 천천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경험이란 것은 늘 주관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따라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 밝히는 것이 여행기를 읽는 데에 약간의 재미를 더해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산 30세의 남성입니다. 국어국문학과 언론학을 전공했고 현재 평범히 직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방문한 것은 대학생 때 어쩌다가 도쿄에 1박 2일간 체류한 경험이 전부입니다. 다만 고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종종 일본 드라마라거나 일본 음악 등을 즐겨왔기 때문에 약간은 일본에 친숙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일본어는 굉장히 기초적인 것들, '생맥주 주세요' 정도를 구사할 수 있으며, 글자는 전혀 읽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여행 경험 자체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여행이라는 것을 삶의 일부로 고려하기 시작한 것은 기껏해야 최근 1년 정도로, 지난 겨울에 베트남 남부에 11일 동안 혼자 다녀온 것이 거의 유일한 여행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여행기는 지일파라거나 능숙한 백팩커의 그것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회사원의 휴가 후기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그를 구성하는 다양한 속성 중에 하나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박태환에 대해 생각할 때 그를 '수영 선수' 정도로 생각하지, 그가 어떤 아들이라거나, 어떤 남자친구라거나, 어떤 식으로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거나, 이런 것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지요. 애석한 일입니다만, 지금은 '수영 선수'도 아니고 '약쟁이' 정도의 정체성으로 그를 소비하고 있지 않나요? 그게 옳은 일인지는 제가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 여행기의 서술자로서 제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속성이 뭘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건 아마 제가 '혼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혼자'를 늘 느끼거든요. 제 외로움이 타인의 외로움에 대하여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돌아보니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히토리데스(혼자입니다)' 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이 여행기를 '혼자만의 자유를 찾아가는...' 그런 흐름으로 쓰고 싶진 않습니다. 혼자인 것은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고, 저는 그걸 아름답게 포장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대체 왜 혼자갔냐고요?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어쩌라고!


왜 가고시마

 7박 8일의 휴가 기간을 정하고 여행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며, 일단 '일본'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동남아시아쪽은 지난 겨울에 베트남을 방문했기 때문에 약간 흥미가 떨어진 상태였으며, 미주나 유럽권은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도 싫었고요. 자연스럽게 친근한 감정을 갖고 있는 일본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늘 좋아하는 조건들 ㅡ 한적한 바다, 양호한 치안, 맛있는 음식과 술 ㅡ 에 부합하는 곳을 찾다보니 '가고시마'란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고시마현 관광연맹이나 가고시마현 공식 블로그에서 한국어로 많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특히 제가 꼭 가고시마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야쿠시마'와 '다네가시마'라는 두 개의 섬 지역 때문입니다. 저는 늘 섬의 이미지를 좋아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 모두의 처지와 가장 닮아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풍경과 닮아 있는 곳을 갈 때 편안한 감정을 느끼겠지요. 도쿄, 오사카처럼 북적이는 인기 관광지에 가서 셀카봉으로 뽀뽀 사진 찍는 커플이라도 보면 제가 뭔 생각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적막한 섬에서 밤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게 좋겠지요. 가고시마에는 야쿠시마와 다네가시마 외에도 '아마미오시마'라는 일종의 군도 지역도 있는 것 같았으나, 여기까지 가는 교통편(일본 국내선)의 가격이 너무 비쌌고, 또 일정도 좀 빠듯해서 그냥 포기했습니다. 아마미오시마는 남국 분위기가 제대로 나는 휴양지 같았는데, 아무래도 제 색시(아직 존재하지 않는...후...)를 꿈꾸게 만들 것 같다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고시마 시', '야쿠시마', '다네가시마' 세개의 여행지를 큰 축으로 세부 일정을 짰습니다. 항공권을 구하는 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고시마 IN, 후쿠오카 OUT의 항공편을 그럭저럭 감당할 만한 가격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가고시마 OUT은 왠지 구할 수가 없더군요. 후쿠오카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뭐 들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전체 일정은

 2016년 8월 10일 (수) 오전에 출국하여 8월 17일 (수) 오후에 귀국하는 일정으로, 개관하면 아래와 같았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표까지 만들어서 계획한 것은 아니고, 지금에 와서야 정리하는 것입니다. 


날짜

이동

숙박지

주요 활동 

 1일차 : 8/10 (수)

 가고시마 IN

가고시마 

 가고시마 시내 및 사쿠라지마 관광.

 2일차 : 8/11 (목)

 가고시마>야쿠시마

야쿠시마 

 숙소 주변 관광, 휴식, 3일차 준비.

 3일차 : 8/12 (금)

 -

야쿠시마 

 시라타니운스이쿄 및 조몬스기 산행.

 4일차 : 8/13 (토)

 야쿠시마>다네가시마

다네가시마 

 숙소 주변 관광, 휴식, 4일차 준비.

 5일차 : 8/14 (일)

 -

다네가시마 

 다네가시마 섬 스쿠터 일주.

 6일차 : 8/15 (월)

 다네가시마>가고시마

가고시마 

 가고시마 시내 관광.

 7일차 : 8/16 (화)

 가고시마>후쿠오카

후쿠오카

 캐널시티 주변 관광.

 8일차 : 8/17 (수)

후쿠오카 OUT

-

 캐널시티 구경, 귀국.


 써놓고 보니 빡빡해 보이기도 하고 여유로워 보이기도 하고 묘합니다. 야쿠시마와 다네가시마는 가고시마 현에 속하긴 하지만 가까운 섬은 아닙니다. 일반 페리로 이동한다면 다네가시마는 4시간 30분, 야쿠시마는 5시간 30분을 이동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 고속선 표가 전부 매진이라 일반 페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죠. 승선 대기 시간 등을 고려하면 거의 반나절을 소모하게 됩니다. 이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고속선을 예매하시거나 혹은 이 섬들을 일정에서 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여행에 '낭비'가 어디있겠습니까. 길을 잃는 것조차 재미인데. 오히려 일반 페리를 추천할 만한 요소도 있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다시 적겠습니다. 

 


 이 여행기는 숙박지에 따라 나눠서 '가고시마/야쿠시마/다네가시마/(다시)가고시마/후쿠오카'의 순서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솔직히 끝까지 적을 수 있을지 약간 자신이 없긴 한데, 가능하면 기억이 생생할 때 쭉쭉 쓰려고 합니다. 얼마만큼의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야 할지, 얼마만큼의 세부적인 정보를 담아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냥 쓰면서 방향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다소 두서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처음 쓰는 여행기이니 이해해 주세요. 그것이 느낌이거나 정보거나, 원하는 부분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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