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시마에서 다네가시마로

  오늘은 다네가시마로 이동해야 합니다. 저는 오전 9시에 출항하는 '페리 타이요'를 타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센노이에의 직원 분께서 항구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시더군요. 끝까지 친절하십니다. 그리고 주인 할아버지(?)께서 도로변까지 나와서 배웅을 해주시는데 약간 황송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덕분에 항구까지 편하게 이동했습니다. 짐까지 내려주시는 직원 분께 지난 이틀 동안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는데 일본어가 짧아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인터넷에 센노이에를 소개하는 것으로나마 보답이 되길 바랍니다. 


(한적한 미야노우라 항.)


  페리 터미널에 가니 이미 승선중이었습니다. 역시 승선 신고서를 써서 창구로 가야합니다. 표값은 1,440엔입니다. 배는 상당히 아담한 페리였습니다. 가고시마에서 탔던 사쿠라지마 페리와 비슷한 크기가 아닌가 합니다. 승객도 거의 없더군요. 1층 좌식 객실에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가족이 하나 있었고, 2층에 가니 약간 무서워보이는 서양 백팩커 형님이 혼자 널부러져 계셨습니다. 어디에 앉을까 어슬렁거리고 있자니 아까 터미널에서 근무하시던 아저씨가 오셔서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술꾼 아버지처럼 거친 인상이셔서 약간 긴장했습니다. 

 

  아저씨 : 이 배 시마마로 갑니다. 거긴 no traffic인데 괜찮습니까?

    저   :  에? 다네가시마로 가는 게 아니에요?

  아저씨 : 다네가시마는 맞는데 시마마로 갑니다. 거기 no traffic 임^^.


  아저씨가 저를 다시 터미널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지도를 보여주시더군요. 알고 보니 '페리 타이요'는 제가 숙소를 예약한 '니시노오모테항'이 아니라 그로부터 남쪽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시마마항'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로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죠. 저는 짧은 일본어로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   : 시마마에 버스 없습니까?

   아저씨 : 에- 버스 없습니다. 어떻게든 OO까지 가면 버스가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저   : 택시는 어떻습니까? OO까지.

   아저씨 : 글쎄요. 1만엔은 나올 것 같은데...

     저    : 으헉, 1만엔?

   아저씨 : 니시노오모테로 가려면 고속선을 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티켓 캔스루?^^


  일단 시마마에 가서 어떻게든 부딪혀 볼까 잠시 고민했습니다만 역시 저답게 그냥 티켓을 캔스루-했습니다. 아저씨께서 직접 창구 직원에게 '어이- 이거 캔스루-' 해주셔서 깔끔하게 환불이 됐습니다. 만약 이 아저씨께서 굳이 저에게 말을 걸어서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무더위 속에 배낭을 메고 시마마에서 헤맸겠죠? 그 편도 나름 당황스럽고 재미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의 친절에 감사했습니다. 센노이에도 그렇고 터미널 아저씨도 그렇고 제가 만난 야쿠시마 사람들은 어찌 이리 다 친절한지!

  페리 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고속선 터미널로 갔습니다. 낡은 페리 터미널과는 달리 상당히 쾌적한 느낌이었습니다. 다행히 10시에 다네가시마로 출발하는 고속선 표가 있더군요. 3,800엔이었습니다. 구매 영수증(?)을 승선 15분 전엔가 승선권으로 교환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여기서 예약도 가능하다길래 다네가시마에서 가고시마로 돌아갈 고속선 표를 사두려고 했는데 그건 매진이랍니다. 돌아올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채로 다네가시마에 가게 된 셈입니다. 제때 가고시마 시로 돌아가지 못하면 신칸센을 못탈 것이고, 신칸센을 못타면 비행기를 놓칠 것이고, 비행기를 놓치면 한국에 못 돌아오고, 한국에 못 돌아오면... 한국에 못 돌아가도 별로 신경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뭐 무너질 가정이라도 있습니까 제가. 그래서 일단 다네가시마로 가서 어떻게든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배에 올랐습니다.

  고속선은 페리와 달리 지정좌석제입니다. KTX좌석 같은 느낌이더군요. 무척 편했지만, 페리처럼 갑판에 나가서 바다를 보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런 느낌으로 약 50분을 달리면 다네가시마에 도착합니다.)


  어째서인지 정원의 1/10도 탑승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야쿠시마에서 다네가시마로 이동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나봅니다. 객실에 있는 TV에서 중계해주는 리우 올림픽 수영 경기도 보고, 책도 조금 읽다보니 금방 도착했습니다. 너무 금방 도착해서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실내였지만 바다 위를 달리는 느낌이 상쾌했거든요. 승무원 분도 무척 친절하고 아름다우셨습니다. (그래서 더 있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


니시노오모테 항

  다네가시마의 니시노오모테 항에 내려서 가장 먼저 가고시마로 돌아갈 배 편을 알아보았습니다. 즐기기도 전에 돌아갈 방법부터 구하고 있자니 너무나 저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멀리 가고 싶은 사람이지만 돌아올 수 있을 만큼만 멀리 가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어쨌든 제 삶은 한국에 있는 것이고 그 삶은 꽤 많은 노력으로 얻은 것이니까 흠을 내기 아까운 것이겠지요. 소시민의 자기 보존 관성이라고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돌아가야 한다는 뻔한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면 애초에 확실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해두는 게 좋겠죠. 더 어렸을 때에는 제가 저인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객기도 부렸던 것 같지만 이제 그냥 저인 채로 최대한 행복해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서 다네가시마의 고속선 터미널에 가서 다시 문의했는데 역시 매진이라고 합니다. 페리가 있으니 그쪽을 알아보라고 권해주시더군요. 페리 터미널은 고속선 터미널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다행히 '프린세스 와카사'라고 하는 페리가 하루에 한번 운행하고 있더군요.  

(다네가시마와 가고시마를 오가는 '프린세스 와카사'의 시간표와 운임.)


  다네가시마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해서 가고시마에 5시 30분에 도착하는 페리입니다. 스탠다드 좌석을 선택하면 편도 가격이 3,900엔입니다. 창구 직원분께 여쭤보니 예약 개념은 없고 당일 11시 30분부터 창구를 오픈하니 그때 표를 구매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쫄보답게 페리 터미널 한편에 있는 여행 안내 센터에 가서 다시 여쭤봤습니다. 역시 예약 없이 당일 와서 구매하면 된다고 하시더군요. 이쯤되면 확실한 것 같아서 안심하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나중에 호텔 프론트에 계신 분께 와카사는 진짜 예약 안해도 되냐고 또 여쭤본 건 비밀.)


다네가시마 아라키 호텔

  아고다에서 미리 숙소를 알아볼 때 다네가시마에서는 선택권이 딱 두 개였습니다. 아라키 호텔과 렉스턴 호텔이었죠. 현지에 가서 민박 같은 것을 알아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저는 성수기의 주말에 방문하는 형편이라 좀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다른 경로로 알아본 몇몇 숙소들이 실제로 만실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둘 중에 고르기로 했습니다. 렉스턴 호텔이 최근에 지어서 (사진으로는) 더 깨끗해 보였고, 숙박비도 아라키의 반값이었지만 저는 위치 때문에 아라키 호텔로 정했습니다. 

  아라키 호텔은 니시노오모테 항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습니다. 주변에 주점이라든지 마트도 있어서 편합니다. 다네가시마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중에 렉스턴 호텔 앞을 지나갔는데, 생각보다 더 외진 곳에 있더군요. 밤에 여기저기서 먹고 마실 계획이라면 렉스턴보단 아라키가 좋을 듯합니다. 렉스턴 옆에도 굉장히 큰 마트가 있긴 한데 식당이나 주점은 전혀 없어보였거든요. 돌아다니면서 먹고 마실 계획이 없으시다면 아예 다른 형태의 숙소를 추천합니다. 드물긴 하지만 호텔 말고 다른 형태의 숙박업소를 보긴 보았습니다. 렉스턴보다 더 예쁜 위치에 말이죠. 


(하얗고 큰 건물이 다네가시마 아라키 호텔입니다.)


  아라키 호텔은 사진으로 봤을 때 너무나 낡아보였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봐도 항구에 있는 뭐 '청해장'이라든지 그런 여관 느낌이잖아요? 다만 실제로 보니까 사진보다는 좀 나아보였습니다. 결혼식도 할 수 있는지 1층에는 결혼 예복이 전시되어 있더군요. 로비는 화려하진 않았지만 상당히 정갈한 느낌이었습니다. 투박한 인테리어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퇴적된 어떤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무려 1848년부터 영업을 한 호텔이더군요. 물론 그때는 지금의 형태랑은 많이 달랐겠지만, 뭔가 '자본'의 힘이 아니라 '가업'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모뻘 되시는 프론트 직원 분께서 저를 맞이해주셨습니다. 역시 어마어마하게 친절하셨습니다. 기계적인 미소가 아니라 '참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구나' 싶은 자연스러운 미소로 응대해주시더군요. 체크인은 두 시부터로, 아직 시간이 꽤 남아있었습니다. 먼저 바이크를 빌릴 만한 곳이 있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더군요. 아쉽게도 샵에 남아있는 바이크가 없다고 합니다. 성수기는 성수기인가 봅니다. 아라키 호텔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거라도 빌릴 수 있냐고 여쭤봤습니다. 빌릴 수 있지만 호텔에서 빌리면 대여료가 하루에 5,000엔으로 무척 비싸고, 밖에서 빌리는 걸 권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다시 전화를 어딘가로 거시더니, 하루에 1,000엔에 빌릴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아니, 이 사람들은 장사를 어떻게 하는 거지요? 자기네 자전거도 있는데 밖에서 싸게 빌리는 자전거를 섭외해주다니요. 직접 지도를 인쇄해 렌탈 샵의 위치를 표시해주시더군요. 상당히 정신나간 친절에 잠시 전개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짐을 맡겨 놓고 호텔 밖으로 나섰습니다. 


니시노오모테 동네 구경 

  일단 자전거를 빌리러 갔습니다. 렌탈 샵은 호텔에서 100여 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젊은 남성 분이 운영하고 계시더군요. 이름과 숙소 따위를 적고, 1,000엔을 내는 것으로 간단히 대여가 되었습니다. 여권을 복사했던 것 같기도 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튼 굉장히 친절했습니다. 바이크 렌탈을 주로 하고 자전거는 세 대 정도 구비해놓고 있는 것 같더군요. 바이크는 역시 없냐고 다시 여쭤봤는데 모두 렌트되었다고 합니다. 오후에는 바다에 가서 놀고 싶었기에 샵 사장님께 니시노오모테 북쪽에 있는 '우라타' 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냐고 여쭤봤는데 '절대로 무리'라고 하시더군요.^^ 가장 가까운 해수욕장은 남쪽에 있는 '요키노'인데 여기까지는 30분 정도면 갈 수도 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정보입니다.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자전거를 끌고 나왔습니다.

  일단은 동네를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날이 무척 뜨거웠지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한결 낫더군요. 니시노오모테를 크게 한 바퀴 돌면서 밥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니시노오모테는 생각보다 더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잘 정비되어 있어서 낙후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상업 시설은 생각보다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식당은 거의 없고 주점이 10여 개 정도 있었는데, 낮 시간에는 대부분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가게든지 영업을 잘 안하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들 휴가라도 간 것일까요? 도시락 가게 하나는 영업 중이었는데 손님이 매우 많더군요. 아무튼 낮에는 식사를 할 곳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후샤 (패밀리 레스토랑)

(다네가시마에서 첫 식사를 한 '후샤'. 기와 모양으로 장식된 저기입니다.)


  그러다가 호텔에서 멀지 않은 사거리에서 '후샤'라는 가게를 찾았습니다. Fusha라고 써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벽에 그려진 그림으로 볼 때 '풍차'의 일본어가 아닌가 합니다. 외벽에 걸려 있는 사진으로 볼 때 파스타나 피자, 도리아 같은 것을 파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것 같았습니다. 안을 슬쩍 보니 손님이 매우 많더군요. 점심 먹을 곳이 별로 없다보니 다 여기로 온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소심맨이라서 혼자 들어가기가 약간 망설여졌지만 별 수 없습니다. 배가 무척 고프고 날은 더웠으므로, 그냥 태연한 척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바쁘게 서빙을 하고 있더군요. 저는 조리실과 면한 바 자리로 안내받았습니다. 생맥주 한 잔과 무슨 카츠 정식을 시켰습니다. 민치 카츠 였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생들이 굉장히 앳되어 보였는데, 현지의 여학생들이 아닌가 합니다. 화장기가 전혀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가 굉장히 건강해보였습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막 허둥지둥 움직이는데 약간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도 친절은 잃지 않아서 왠지 대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뭔 아빠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요. 요점은 후샤가 좀 촌스럽지만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가게라는 것입니다. 

(정말 시원했던 맥주.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는ㅡ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곧 나온 민치카츠 정식. 조금 아기자기한 느낌? 나이가 어려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민치카츠(확신할 수 없으나)는 그저 그랬는데 맛있었습니다. 무슨 이상한 소리냐, 싶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슨 육즙이 어쩌고 그런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고요, 카츠 자체는 그냥 한X 도시락에 들어가는 돈가스보다 조금 나은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다만 저 흰밥, 미소시루, 우엉, 나폴리탄 같은 구성품들이 뭔가 '서툴지만 최선을 다했어!'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구색을 갖추려고 한껏 애를 쓴 것이 귀여운 느낌 있잖아요. 애인이 '오늘 처음 해보는 거라서 맛은 없을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어줘' 하면서 내미는 한 상의 느낌? (사람은 어째서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외딴 섬, 그리고 그 섬에 왠지 잘 안 어울리는 유럽풍의 가게, 두건과 앞치마를 한 채 허둥지둥 움직이는 아르바이트생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정감 있는 한 끼를 먹었습니다. 맥주도 두 잔이나 마셨고요.    


요키노 해수욕장

 점심을 먹고 아라키 호텔로 돌아가 체크인을 했습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수영복을 챙겨서 요키노 해수욕장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쪽 방향으로 쭉 달리면 되니까 길 찾기는 쉬웠습니다. 다만 오르막길이 꽤 많아서 자전거로는 가볍게 다녀오기 어렵습니다. 저는 튼튼하고 시간이 많으니까 그냥 꾸역꾸역 갔습니다. 30분쯤 달리니 해안도로가 나왔습니다. 도로를 따라 백사장이 길게 펼쳐져 있고, 바디보드를 즐기고 있는 한두 명의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요키노까지 가지 귀찮으시면 그냥 여기서 뛰어드셔도 됩니다. 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분좋게 조금 더 갔고, 곧 요키노 해수욕장이라는 큰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해안 방향으로 들어가 주차장을 지나면 도로쪽에서는 보이지 않는 해수욕장 입구가 있습니다. 간단한 음식과 칵테일 따위를 파는 노천 펍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서핑보드와 튜브 따위를 대여해주는 작은 가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게에서 관리하는 샤워실과 탈의실이 있습니다. 이것이 부대시설의 전부입니다. 코인로커는 없다고 하더군요. 섬주민들이 운영하는 그냥 작은 해수욕장입니다. 뛰어들기 바빠서 사진은 전혀 안 찍었네요. 핫핫.

  바다는 평범하다,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동남아 휴양지 같은 그런 풍경은 아니고요. 동해 느낌인데 백사장이 좀 짧고 물이 조금 더 맑은 정도입니다. 부표와 끈을 이용해 해수욕 구역을 만들어놨더군요. 안전요원도 한분 상주하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가방을 대충 백사장에 던져놓고 바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이 적당한 온도라서 기분이 좋더군요. 바다에 둥실둥실 떠서 햇빛을 쬐기도 하고, 본격 파워수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수욕 구역이 꽤 넓고 물이 깊은 곳도 있기 때문에 수영을 즐기기에는 충분합니다. 외국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전부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온 일본인들 같더군요. 튜브를 타고 링가링가하거나 공놀이를 하거나 뭐 그런 평화로운 분위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네가시마는 서핑이 유명합니다. 아까 본 가게에서 서핑 레슨도 하는지 해수욕 구역 옆에서 서핑을 배우는 젊은이들도 있더군요. 저는 서핑을 한국에서만 두 번 해보았는데 꽤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요키노에서도 해볼까 했는데 파도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요키노는 서핑 스팟이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해수욕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서핑보다는 차라리 바디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더 많아보이더군요. 

  몸이 노곤해질 때까지 물에서 놀다가 나왔습니다. 가게에 100엔을 지불하면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칵테일을 한 잔 할까했는데 입간판에 적혀 있는 메뉴가 전부 일본어라서 조금 까다로웠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로 다시 돌아가려면 체력을 조금 아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관뒀습니다. 해가 적당히 기울어져서 올 때보다는 한결 시원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사진도 몇 장 찍었지요.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썩 좋았습니다.)


(요키노와 니시노오모테항 사이에 있는 대형 마트.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위의 마트 옆에 있는 렉스턴 호텔. 괜히 찍어봤습니다.)


(바다를 따라 달리다보니 막다른 골목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왠지 재미있었습니다.)


(벤치에 몇 개의 낙서가 있는데 '이창운' 씨께서 성함을 남기셨더군요. 누구신지는 물론 모릅니다.)


(동네에서 찍어본 파노라마 사진. 이렇게 한적한 곳입니다.)


  니시노오모테로 돌아와 아까와는 반대 방향, 즉 북쪽으로 조금 가보았습니다. 역시 상점이나 식당은 거의 없더군요. 버스 정류장을 발견했는데 부착되어 있는 노선도나 시간표를 보니 실제로 이용하기는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일은 어쩌나 하고 일단 자전거를 샵에 반납하러 갔습니다. 저녁에는 어딜 돌아다닐 계획이 없었거든요. 반납하면서 '내일도 바이크가 없냐'고 여쭤보니 내일은 한 대가 있다고 하더군요. 오! 바로 예약했습니다. 아침 9시부터 대여가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인적사항을 적어두고 샵을 나왔습니다. 바이크가 없으면 좀 심심할 뻔했는데 이렇게 일이 풀리다니 기분이 좋더군요. 


아카오기 온천

  아라키 호텔의 옆에는 아카오기 온천이라는 대중목욕탕이 있습니다. 아라케 호텔에 체크인할 때 온천 티켓을 하나 주는데, 숙박객은 이 티켓으로 온천을 입장료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1회권이 아니라 체크아웃할 때까지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입니다. 식사는 좀 늦게 할 셈으로 일단 온천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빨래도 하고 싶었는데, 코인 런드리가 온천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객실에 비치되어 있는 유카타를 입고 가려고 했습니다. '지금 땀에 쩔었는데 이 상태에서 유카타를 입고 갔다가 씻고 다시 입어야 하나? 아니면 유카타를 챙겨갈까?' 라거나 '유카타 안에 속옷을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따위를 저답게 쓸데없이 고민했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걸 입고 밖으로 나가도 되긴 되는 건가' 따위를 고민했습니다. 소심맨답게 인터넷으로 좀 찾아보니 입고 나가도 될 것 같더군요. 단, 속옷은 입고 유카타를 입기로 했습니다.^^  

  온천은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는지 외관이 굉장히 깨끗했습니다. 아카오기가 '붉은 기와'라는 뜻인가요? 외장이 붉은색으로 되어 있는데 괜히 들어가보고 싶게 생겼습니다. 온천은 첫 경험이라 약간 설레하며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카운터에서 사장님과 사모님 (제멋대로 부부라고 생각)이 반갑게 맞아주시더군요. 티켓을 보여드리니 즐겁게 이용하시라며 남탕은 저쪽이라고 안내해주셨습니다. 일단 세탁실에 가서 빨래를 잔뜩 돌려놓고 남탕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탕 거실로 들어가니 사물함이 벽을 따라 있고 한쪽에는 드라이기와 거울 따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체중계도 있더군요. 우리네 대중목욕탕과 그리 달라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천탕이 아니면 뭐 다 이런 느낌인 것일까요? 다른 온천에 안 가봐서 비교는 할 수 없는데 아무튼 친숙한 느낌이었습니다. 옷을 다 벗고 들어가볼까-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수건이 안 보이더군요. 다시 카운터로 나갔습니다.


  저   : 수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장님 : 아, 수건은 직접 준비하셔야 합니다. 호텔 객실에서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저   : 헉. (호텔 프론트에서 온천갈 때 객실 수건 가져가라고 말해준 걸 이제 기억함.)

사장님 : 하하. 다시 다녀오셔도 됩니다. 아니면 오른쪽에 유료지만 자판기가 있습니다. 

  저   : 그럼 자판기에서... (다시 다녀오기 매우 귀찮았음.)

사장님 : 큰 수건은 14번을 누르시면 됩니다.^^


  카운터 옆에는 자판기가 있는데 음료나 수건, 세면도구 따위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물건이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티켓이 나오고, 이 티켓을 카운터에서 물건과 교환하는 것입니다. 이것 참 일본다운 시스템이구먼, 하면서 수건 티켓을 뽑아 카운터에서 교환했습니다. 어째서인지 카운터에서는 수건과 함께 비닐봉지도 하나 주더군요. 이건 왜 주지? 싶었지만 어쨌든 챙겨서 다시 남탕으로 왔습니다. 흥얼흥얼 이제 진짜 들어가야지- 하는데 다 쓴 수건은 어떻게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 저답게 다시 카운터에 갔습니다.^^


   저  : 죄송합니다만 쓴 수건은 어디에...?

사장님 : 아, 그 비닐봉지에 넣어서 카운터로 주시면 됩니다.^^

   저  : 아하! 감사합니다. 핫핫;;


  네 이렇게 카운터를 두번 왔다갔다한 다음에야 저는 탕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탕 내부도 우리 대중목욕탕과 그렇게 다르진 않았습니다. 손님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작지만 야외 공간에 있는 탕도 있었어요. 가족탕 같은 것은 없으니 따로 이용하셔야 합니다. 연인끼리 가셔도 같이 목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뜨끈하게 몸을 담그고 피로를 조금 풀었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무척 개운하더군요. 유카타는 목욕 후에 입기에 참 좋은 옷인 것 같습니다. 생긴 게 목욕 가운이나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뭔가 쾌적(?)하더라고요. (여성분들이 원피스를 입었을 때 이런 기분일까요? 저는 어떤 자유를 느꼈습니다.) 빨래가 아직 십여 분 남았길래 자판기에서 맥주 티켓을 뽑았습니다. 네, 목욕을 하고 바로 생맥주를 사먹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입니다. 훗훗. 맥주를 주시면서 사장님이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시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꽤 놀란 표정으로 반갑다고 하시더군요. 한국 사람들이 그다지 오지 않나봐요. 아무튼 홀에서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면서 올림픽 중계를 잠시 봤습니다. 첫 모금은 제 인생에서 손꼽을 만큼 시원한 맛이었습니다. 애인도 없었고, 곧 빨래를 주섬주섬 들고 호텔로 홀로 돌아가야 하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분지족, 시조라도 한 수 뽑고 싶었습니다. 왠지 알콜중독자 같네요. 뭐 마시기만 하면 다 좋대. 어쨌든 이렇게 저의 온천 체험은 끝났습니다. 


아라키 호텔 : 비어가든

  일찍 잘 셈이었기 때문에 저녁은 아라키 호텔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아라키 호텔의 5층에는 WAKASA라는 레스토랑과 비어가든이라는 주점이 있습니다. 같은 주방을 공유하며 규모는 둘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WAKASA는 예약을 하면 카이세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유카타를 입은 일본인 가족들이 많이들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저는 물론 비어가든으로 향했습니다. 

  비어가든은 옥외에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데, 고급스럽진 않지만 꽤 운치가 있습니다. 역시 일본인 가족들이 바베큐 요리를 많이 즐기고 있었어요. 6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았더니 좀 멋쩍더군요. 바베큐가 주력 메뉴인 것 같았지만 혼자서는 좀 번거로워서 종업원 분께 다른 메뉴 추천을 부탁드렸습니다. 흰살 생선의 카르파쵸를 권하시더군요. 카르파쵸가 뭔지 몰랐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사시미를 야채와 함께 이러쿵저러쿵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시미는 늘 옳기 때문에 괜찮겠지 하고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쇼츄도 한 잔 부탁드렸지요. 주문을 해놓고 생각해보니 쇼츄 쿠폰이 있는데 방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비어가든 간다고 하니까 프론트에서 쇼츄 1잔을 받을 수 있는 쿠폰을 주셨거든요. 말하고 가져올까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카르파쵸가 나왔는데 음, 제가 생각한 그런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시큼한 맛이 나는 일종의 사시미 샐러드인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태리 요리인 것 같더라고요. 게다가 메인이라기보다는 전채 요리^^ 이게 맛있게 만든 카르파쵸인지 대충 만든 카르파쵸인지 그건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카르파쵸라는 요리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사시미는 굳이 야채와 드레싱에 버무릴 것 없이 그냥 사시미로 먹을 때가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헛헛한 마음에 꼬치도 몇 개 주문했는데, 이것도 왠지 별로 맛이 없더군요. 여럿이 가서 바베큐를 드실 게 아니라면 비어가든은 그다지 권할 만한 선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충 배를 채우고 방에 식대를 달아둔 뒤에 내려왔습니다. (나중에 체크아웃할 때 보니까 쇼츄값을 빼줬더라고요. 제가 말한 것도 아닌데, 아라키 호텔 oh oh)


  왠지 허전하여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낮과는 달리 주점들이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딘가에 들어가 한 잔을 더 할까 생각했지만 내일 일찍 바이크를 빌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관뒀습니다. 맥주 한 캔만 사들고 방에 돌아왔습니다. 방은 무척 작지만 혼자 있기는 충분히 컸습니다. 제 방은 '옆 건물 뷰'라서 창문을 열고 밤바다를 바라보며... 같은 것은 할 수 없었어요. 내일의 여행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고 누웠습니다.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있었을까요? 내일은 바이크를 타고 다네가시마를 한 바퀴 돌 것입니다. 이번 여행에 하이라이트가 있다면 그건 내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하이라이트는 언제나 내일이거나 어제일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곧 잠에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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